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문화유산경관연구실/국가유산 허용기준 조정

여주시 서희장군묘 현상변경허용기준 및 현황

by 지식 2021. 7. 8.

 

■ 서희장군묘 현상변경허용기준 고시도면

경기도 고시 2021-247, 2021.12.10

 

 

■ 서희장군묘 개요

종목 경기도 기념물 제36
명칭 서희장군묘
분류 유적건조물 / 무덤 / 봉토묘
수량/면적 1
지정일 1977.10.13.
소재지 경기도 여주시 산북면 후리53-1
시대 -
소유자 -
관리자 -

 

고려 초기의 외교가이자 문신인 장위공 서희(徐熙, 942∼998)의 묘이다. 973(성종 12)에 거란이 80만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여 압록강을 건너오자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하여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내세워 유혈의 전투 없이 거란군을 물러가게 했다.

묘역은 부인과 함께 매장된 쌍분(雙墳 ; 두개의 봉분)의 형태이다. 봉분은 커다란 직사각형태에 하단에 2단의 둘레석을 둘러 봉분을 보호하였다. 묘역은 계단식으로 3단으로 나누고 계체석(階砌石 ; 묘역을 구분하는 편평하고 긴 경계석)으로 구분하였는데, 고려의 묘제임을 보여주고 있다.

양 봉분의 가운데에 묘표 1기를 설치하였는데, 원수방부형(圓首方趺形 ; 둥근 머릿돌과 사각 받침돌의 비석 형태)이고 큰 해서체로 글씨를 썼다. 장명등은 원래 각 상석 앞에 있었으나 정면 왼쪽 장명등을 도난당해 지금은 정면 오른쪽 장명등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.

잔존한 장명등은 머릿돌을 2개 얹은 상태인데, 후대에 변형된 것이다. 석인은 2쌍이 있는데, 문석인과 무석인의 차례대로 배치하였다. 문석인은 홀을 쥔 복두공복형(幞頭公服形 ;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, 공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)이고 무석인은 긴 검을 손에 쥔 형상이다. 무석인은 갑옷을 입지 않고, 직령포를 입었는데, 15세기 전기의 양식을 반영한 것이다. 이 묘역은 고려시대의 묘제가 일부 남아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.

 

 

■ 서희장군묘 현황사진

서희장군묘역에서 바라본 주변경관은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뷰를 형성하고 있음.

문화재 외곽의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주변은 크게 취락지구, 농경지, 임야로 구분되고 있음.

  • 서희장군묘 주변

 

 

  • 서희장군묘 주변 마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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